가을로 접어드는 지금, 새로 시작하는 전시들이 각각의 색들을 가지고 파리 곳곳을 물들인다. 이러한 특별 전시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살았던 예술가, 현재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예술가와 간접적인 호흡을 통해 삶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지금 파리에는 어떤 특별한 전시들이 열리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루브르 박물관 - 자크 루이 다비드, 200주년 회고전(Jacques-Louis David)
Musée du Louvre, Paris, France
루브르 박물관 / 2025년 10월 15일 - 2026년 1월 26일
18세기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200년이 지난 오늘 그의 영혼이 다시 한번 루브르에서 숨을 쉰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프랑스 예술이 걸어온 ‘이성의 서사’를다시 펼쳐 보이는 특별한 자리이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기수였다. 그는 이전 미술사조인 바로크의 화려함을 버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이상적 균형과 엄격한 윤리를 되살렸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4)는 그대표적 선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세 아들이 조국을 위해 죽음을 맹세하는 장면 속에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 그리고 희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후 다비드는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의 동지이자, 혁명정부의 ‘공식 화가’였다. 그의 붓은 정치의 도구이자 신념의 무기였던 셈이다.
혁명 이후 그는 나폴레옹의 화가가 되었고, 〈나폴레옹의 대관식〉(1807)을 통해 절대권력의 상징을 그렸다. 혁명가에서 제국의 화가로 그의 인생은 신념과 권력 사이의 끝없는 긴장이었다. 이번 루브르 회고전은 바로 그 양면을 모두 보여준다. 거대한 캔버스 뒤에 숨은 정치적 맥락, 망명 시절의 고요한 초상화,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편지들이 함께 전시된다.
혁명과 이상, 예술과 권력, 그리고 인간의 고독을 그의 붓끝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시간의 두께를 손끝으로 느끼는 듯하다. 다비드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가 꿈꾼 ‘이성의 빛’은여전히 파리의 공기 속에 깃들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 - 존 싱어 사전트, 눈부신 파리(John Singer Sargent: Dazzling Paris)
Musée d'Orsay, Paris, France
오르세 미술관 / 2025년 9월 30일 - 2026년 1월 11일
따스한 빛으로 채워진 오르세 미술관에서, 한 세기 전 파리를 사랑한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세계가 되살아난다. 전시 제목은 〈Dazzling Paris〉, 이름 그대로 눈부시고도 우아한 시절, ‘벨에포크(Belle Époque)’의 찰나를 그린 전시이다.
사전트는 미국인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예술은 언제나 ‘유럽적’이었다. 파리, 런던, 베네치아를 오가며 그는 당대 상류사회의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의 초상은 단순한 외모의 기록이 아니었다. 〈마담 X〉(1884) 의 강렬한 어깨선처럼, 그의 붓은 인물의 사회적 가면 뒤에 감춰진 내면의 긴장을 드러냈다. 이번 오르세 전시는 바로 그 ‘파리 시절의 사전트’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의 첫 장에서는 사전트가 그렸던 파리 귀부인들의 초상이 줄지어 있다. 비단 드레스의 주름, 부드러운 손목의 곡선, 살짝 내리깔린 시선.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고요한 불안이 스며 있다. 그는 빛을 정교하게 다루는 화가였지만, 그 빛이 비추는 것은 인간의 고독이었다.
전시 후반부에선 그가 초상화를 넘어 자연과 빛을 탐구하기 시작한 시기의 수채화와 풍경화가 전시된다. 그 그림들은 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감정의 숨결이 가볍다. 사전트는 사회의 초상화가에서 ‘자유의 화가’로 변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마치 파리의 공기 자체가 캔버스에 머문 듯 하다. 그는 파리의 빛을 그렸지만, 그 빛 속에 인간의 내면을 녹여내었다. 〈Dazzling Paris〉 전시는 단지 화려한 시절의 재현이 아니라, 빛이 인간을 어떻게 드러내고 감추는가를 탐색했던 한 화가의 영혼의 연대기를 다룬 것이다.
피노 컬렉션 - 미니말(Minimal)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Rue de Viarmes, Paris, France
피노 컬렉션 / 2025년 10월 8일 - 2026년 1월 19일
파리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 원래 곡물 거래소였던 이 공간은 지금 세계적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가 꾸린 현대미술의 성전으로 변모했다. 그곳에서 지금, 그어떤 전시보다 고요한 〈Minimal〉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비어 있음”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낀다. 거대한 벽면엔 색 하나 없는 캔버스가 걸려 있고, 조명은 그림자조차 조심스럽게 드리운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엔 기이한 긴장감이 스며들어 있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정밀한 직육면체 구조물, 댄 플래빈(Dan Flavin) 의 형광등이 만들어내는 빛의 리듬. 각각의 작품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사유를 끌어낸다.
이번 전시는 미니멀리즘의 ‘역사적 정리’가 아니다. 오히려 “비움 이후의 풍요”를 묻는다. 피노 컬렉션은 이 고요한 미학을 21세기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디지털 피로와 과잉 정보 속에서 인간은 왜 단순함을 다시 그리워하는가. 그 답을 찾기 원한다면 이 전시는 완벽한 사색의 공간으로 관람자들에게 다가온다.
빛과 공간이 하나의 예술이 되는 곳, 작품이 아니라 ‘공기’를 감상하게 되는 전시. 〈Minimal〉은 단순히 시각적 경험을 넘어, “조용함”이라는 감각을 되찾게 한다. 전시를 보고 나온 뒤, 파리의 분주한 거리로 나설 때, 도시의 소음조차 이전과 다르게 들리게 될 것이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Fondation Louis Vuitton, Avenue du Mahatma Gandhi, Paris, France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2025년 10월 17일 - 2026년 3월 2일
파리 16구, 아방가르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유리와 강철의 미술관인 퐁다시옹 루이비통에서는 독일 현대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리히터는 1932년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동독에서 성장했고, 1961년 뒤셀도르프로 망명하여 이후 쾰른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다. 본 전시는 그의 1962년부터 2024년까지 약 60여 년에 걸친 예술 여정을 조망하며, 회화·설치·드로잉·사진·유리와 강철 조각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약 270여~275점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전시 구성은 연대기적이다. 초기의 사진 기반 회화에서부터 흐릿하게 처리된 이미지, 색채 격자, 풀스케일 추상화로 이어지는 그의 실험적 궤적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 변화가 아니라 이미지와 회화적 언어에 대한 고민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관람하면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실재와 이미지”간의 긴장, “우연과 통제”의 공존, 그리고 역사적 기억과 개인적 경험이 맞부딪히는 순간들이다. 가령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4900 Farben”는 색채 격자라는 단순한 틀 안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서사를 품고 있으며, 유리, 강철 조각을 통해서 물질 자체가 시각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 본 전시는 관객이 작가의 세계 안으로 직접 들여다본다는 인상을 준다.
건축적으로도 이 전시는 빛과 공간의 연출이 돋보인다. 프랭크 게리의 미술관 내부가 리히터의 이미지 실험과 맞물리면서, 작품이 행하는 ‘빛과 반사’의 놀이가 공간과 함께 살아 움직인다. 이로 인해 단순히 작품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관객이 시간과 매체의 흐름을 체험하도록 설계된 전시가 된다.
예술적 경험을 넘어 사유의 경험으로서 이 회고전은, “보이는 것”이 무엇이며 “이미지”가 어떻게 기억과 역사, 정체성과 연결되는지를 묻는다. 이 기획전은 단순한 미술 관람을 넘어 한 작가가 어떻게 시대와 매체를 초월해 자신의 예술을 구축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 - 조르주 드 라 투르, 어둠과 빛 사이(George de la Tour, Entre ombre et lumière)
Musée Jacquemart-André, Boulevard Haussmann, Paris, France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 / 2025년 9월 11일 - 2026년 1월 25일
고전적인 저택을 개조한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에서는 프랑스 바로크 회화의 거장 조르주 드 라 투르의 특별전 <어둠과 빛 사이(Entre Ombre et Lumière)〉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 그대로, 라 투르의 세계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조용한 시선이 머문다.
조르주 드 라 투르(1593–1652)는 프랑스 동북부 루렌 지방에서 활동한 화가로, 한때 잊혔다가 20세기 초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된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화려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대신 촛불 하나가 만들어내는 고요한 빛 속에서, 인간의 얼굴과 사유, 그리고 신앙의 순간을 담담히 포착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라 투르의 예술적 본질을 탐구하며, 약 40여 점의 회화 작품을 통해 그가 어떻게 어둠 속에서 진정한 빛을 찾아갔는가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의 분위기다.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특유의 따뜻한 조명과 클래식한 인테리어는, 라 투르의 그림과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룬다. 〈속죄하는 막달레나〉 속 인물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부드러운 빛은, 마치 관람객이 그 촛불 앞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색채나 극적인 구성이 아닌, ‘침묵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라 투르 회화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빛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정신적 빛, 고요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의 은유다. 라 투르는 종교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일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물들은 성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서는 경건함보다 먼저, 어떤 따뜻한 공감이 일어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빛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는 철학적 여정에 가깝다. 어둠과 고독, 그리고 신앙과 희망이라는 상반된 감정들이, 라 투르의 손끝에서 하나의 조용한 조화로 완성된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그 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아 오래도록 흔들리는 내면의 불빛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 - 칸딘스키, 색채의 음악(Kandinsky, La musique des couleurs)
Philharmonie de Paris, Avenue Jean Jaurès, Paris, France
필하모니 드 파리 / 2025년 10월 15일 - 2026년 2월 1일
파리의 예술적 심장부,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지금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퐁피두 센터와 공동으로 기획된 “칸딘스키 – 색채의 음악”은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Vassily Kandinsky)의 예술세계를 ‘음악’이라는 감각의 언어로 탐구한다.
칸딘스키에게 회화는 단순히 시각적인 예술이 아니었다. 그는 색채를 ‘소리’로, 형태를 ‘리듬’으로 느꼈으며, 그림을 하나의 교향곡처럼 구성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예술 속에 흐르는 그 음악적 사유를 시각과 청각, 공간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전시장에는 약 200여 점의 회화, 드로잉, 문헌, 그리고 그가 영감을 받았던 음악 자료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은 헤드폰을 통해 실제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닌 ‘감각의 융합’이라는 경험을 선사한다. 바흐의 푸가, 쇤베르크의 불협화음, 러시아 민속음악의 리듬이 그의 색채와 만나며, 그가 꿈꾸었던 ‘보이는 음악’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특히 필하모니 드 파리라는 음악 전용 공간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장소 자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작동한다. 건축의 곡선과 음향이 칸딘스키의 회화적 리듬과 공명하며, 관객은 ‘음악을 듣는 듯한 그림’과 ‘그림을 보는 듯한 음악’ 사이를 오간다.
“색채의 음악”은 단지 칸딘스키의 작품을 나열하는 회고전이 아니다. 그것은 색채가 소리를 품을 때, 예술이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시각화한 실험이자, 예술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제안이다. 이 전시는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닌, 예술 그 자체가 울려 퍼지는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케 브랑리 박물관 - 아마조니아, 원주민의 창조와 미래(Amazônia: Native Creations and Future)
Musée du quai Branly - Jacques Chirac, Quai Jacques Chirac, Paris, France
케 브랑리 박물관 – 자크 시라크 / 2025년 10월 8일 - 2026년 1월 26일
센느 강변의 나무 그늘 사이로 자리한 케 브랑리 박물관은 언제나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번 특별전 〈Amazônia〉는 그 이름처럼, 지구의 심장이라 불리는 아마존의 자연과 문화를 예술로 되살려낸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는 변한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습한 소리, 나무와 흙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울리는 새소리. 마치 진짜 열대우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민속 유물의 모음이 아니다.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등지의 원주민 공동체 예술가들과 현대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공존의 미학”이다.
전시 한가운데에는 브라질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Sebastião Salgado)의 대형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숲과 강,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정지된 듯, 그리고 살아 숨 쉬듯 펼쳐진다. 그 사진들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 그리고 문명의 탐욕이 초래한 균열을 고발하는 시각적 시라 볼 수 있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원주민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직조물과 조각이 전시되고 있다. 그들의 예술은 재료부터 다르다. 나무껍질, 점토, 천연 염료, 새 깃털에 이르기까지 자연이 곧 캔버스이자 재료인 것이다. 이 전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예술은 인간만의 언어인가, 아니면 자연의 연장선인가?”
〈Amazônia〉는 생태적 전시를 넘어, 현대 사회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문명화된 도시 파리의 한가운데에서, 관람객은 원초적 세계와 마주한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원시의 미가 아니라, 지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감각이다.
By Heetae JUNG 정희태
와인과 사랑에 빠져 2009년 처음 프랑스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프랑스 국가 공인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여 활동 중이다.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미술관>,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디스이즈파리> 총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