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사랑한다면 프랑스로, 여행은 거들뿐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프랑스 여행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에펠탑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저녁에 와인을 마시고, 갓 구운 바게트와 빵을 한 아름 안고 걷고, 불가사의한 몽 생 미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라벤더가 만발한 그라스를 거닐며, 끝없는 파랑, 그야말로 그랑블루에 가까운 니스 해변을 만끽하는 것 등이다.

맞다. 그런데 이게 끝은 아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라면 프랑스에 가야 한다. 프랑스는 1년 내내 전국 방방곡곡에서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를 연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가 프랑스를 배경으로 벌어진다. 최근에 뻔한 관광코스를 따라가는 것보다는 특정한 행사를 위주로 여행을 계획하는 이가 많다.

‘프랑스에서 스포츠를 본다고?’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이를 위해 2023년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이벤트를 준비했다. 스포츠를 관람하고, 남은 시간에 여행 천국 프랑스를 덤으로 즐길 기회다.

북부 프랑스의 봄은 사이클을 타고

4월 초에 프랑스 그것도 파리 여행을 계획했다면 거칠기로 유명한 127년 전통의 사이클 대회, 파리-루베(Paris–Roubaix) 경기를 볼 수 있다. 이 대회는 4월 8일(여자 경기)과 9일(남자 경기)에 걸쳐 벌어지는데 하루에 끝나는 경기라 둘러보기에도 좋다. 출발지인 콩피에뉴(Compiègne)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70km 정도 가면 있는 도시이며, 결승점이 있는 루베는 20세기 초에 전 세계 섬유 수도로 불릴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다. 2000년에는 예술과 역사의 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경기를 돌아본 뒤 파리로 돌아오면 벚꽃이 반길 것이다. 4월 파리는 온통 핑크빛이다.

5월의 파리를 만끽할 수 있는 ‘붉은 코트’

개인적으로 5월 파리를 항상 꿈꾼다. 어렸을 때 테니스를 접했거나, 지금도 테니스와 함께하는 이라면 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파리 북서부에 있는 롤랑 가로스 테니스장에서 열리는 ‘프랑스 오픈’은 4대 오픈 중에서 유일하게 클레이(흙) 코트에서 하는 대회다. 무엇보다 상징성이 뛰어나 프랑스 오픈보다는 롤랑 가로스(프랑스의 전설적인 비행사 이름을 따서 지었다)라고 불린다.
1928년부터 시작된 이 대회는 올해 5월 22일에 시작해 6월 11일에 끝난다. 이 경기장은 앙투카(en tous cas)라는 특별한 흙으로 만든 코트를 사용한다. 이 흙은 사실 특수하게 만든 붉은 벽돌의 가루다. 앙투카와 다섯 단계로 이뤄진 특수한 층 덕분에 비가 그친 뒤 한 시간 정도면 ‘어느 경우에나(en tous cas)’ 테니스를 칠 수 있다.
이 대회에서 14회 우승한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이번에도 우승할지 지켜보는 일도 즐거울 것이지만, 대회 중간중간 프랑스의 장미 시즌을 만날 수 있어 더 특별하다. 5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 프랑스의 어느 곳에서도 장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발 드 루아르 지역으로 가면 세상에 없는 신비로운 광경과 마주할 수도 있다.

포드 vs 페라리

6월에는 24시간 레이스로 유명한 자동차 경주 대회 ‘르망 24시’가 열린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14km에 달하는 서킷을 돌아 가장 많은 바퀴를 돈 차량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이 대회는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르망에서 개최된다. 한 해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에 열리는데, 올해는 6월 10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영화 ‘포드 vs 페라리’를 보고 예습하시면 더 좋다. 영화는 현실에 조금 ‘조미료’를 쳤지만 매우 재미있다.

강렬한 여름엔 투르 드 프랑스

투르 드 프랑스는 프랑스 여행과 동의어다.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리면 지금도 1,000~1,200만 명(이하 2019년 기준)이 프랑스 전역으로 몰려든다. TV로 이 대회를 한 번이라도 시청한 프랑스인은 3,540만 명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적어도 10억 명이나 된다. 한국에서도 투르 드 프랑스를 직접 보려고 여행을 준비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번 대회는 7월 1일부터 23일(여자부는 23일~30일)에 걸쳐 열린다. 투르 드 프랑스 구간은 총 21개인데, 모든 구간이 각 지역의 절경을 배경으로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유명한 구간에는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이가 몰릴 정도다. 이번 대회 출발점은 스페인 빌바오이고, 결승점은 언제나처럼 파리 샹젤리제 거리다.

에비앙 생수와 함께하는 골프

사이클이 너무 동적이라면 조금 고요한 스포츠도 있다. 에비앙 생수로 유명한 에비앙-레-뱅에 있는 에비앙 리조트 골프 클럽에서 열리는 ‘2023 더 에비앙 챔피언십(여자대회, 7월 27일~30일)’도 볼만한 가치가 높다. 메이저 대회로 격조 있는 데다 대회를 개최하는 코스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2019년에는 고진영(한국)이 우승했고, 2016년 대회에서는 전인지가 대회 신기록(-21)을 세우기도 했다. 에비앙 지역은 자연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기에 관광을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에비앙 생수 수원지도 방문해보시길!

가을엔 럭비를 보겠어요

프랑스는 축구로 유명하지만, 사실 럭비의 인기도 상상을 초월한다. 가을에 프랑스를 방문한다면 9월 8일부터 10월 28일에 걸쳐서 벌어지는 ‘2023 럭비 월드컵’을 꼭 한 번 경험하면 좋겠다. 어느 지역을 방문하더라도 대회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파리뿐 아니라 보르도, 릴, 리옹, 마르세유, 낭트, 니스, 생테티엔, 툴루즈에서 경기가 벌어진다. 대회는 총 20개 팀이 참가하는데 A조가 가장 박진감 넘친다. 개최국 프랑스와 ‘올블랙스’ 뉴질랜드가 개막전 맞대결을 벌인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홈 경기장으로 쓰는 프랑스의 심장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에서 경기가 진행되니 파리를 방문한 이라면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럭비는 축구와 또다른 맛이 있다. 이번 가을 꼭 한 번 럭비와 뜨겁게 만나길 바란다.

와인 마시며 달려보자

9월 1일에는 와인으로 유명한 메독에서 가을마다 열리는 마라톤 뒤 메독이 기다리고 있다. 이 대회는 빨리 들어오는 것보다 충분히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 8~10km를 ‘산책하며(대회 주최측에서도 balade라고 썼다)’ 와인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게 대회 방침이다. 이런 놀고 먹는 대회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