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 김수자가 그리는 찬란한 무지갯빛 세상 속으로

파리 중심부에 자리한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Galeries Lafayette Haussmann)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럽 최대 백화점으로, 파리에 가면 꼭 들리는 쇼핑 스폿이자 시내가 한눈에 보여 여행객들이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관광 명소이다. 무엇보다 화려한 유리 돔 건축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라 칭할 만큼 아름답다. 지난 4월 14일부터 파리의 랜드마크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에 김수자 작가의 작품 ‘호흡’이 자연스럽게 숨 쉬듯 스며들어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다.

파리를 밝히는 황금빛 역사가 시작되다

5-Vue intérieure du grand hall et de la coupole d’origine,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carte postale, 1912 © Galeries Lafayette© Galeries Lafayette
갤러리 라파예트의 설립자 테오필 바더(Théophile Bader)는 ‘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문화와 호흡하며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화려한 유리 지붕에서 내려온 빛줄기가 백화점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진열된 제품을 더욱 아름답게 비추는 럭셔리 바자르(luxury bazaar)를 꿈꾸었던 것. 바토르는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건축가 페르디낭 샤누(Ferdinand Chanut)와 유리 공예가 자크 그루버(Jacques Grüber)에게 돔 디자인을 의뢰했다. 건축가는 높이 43m의 네오 비잔틴 양식의 돔을 디자인했으며, 그가 설계한 물결 모양의 구조는 빛을 실내로 끌어들여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유리 공예가는 외부 환경에 따라 하루 종일 변하는 자연광을 표현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청록색과 주황색 등 다채로운 컬러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디자인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에 황금색 요소와 어우러진 에두아르 솅크(Edouard Schenck)의 철공 작업을 더한 건축물은 마치 한낮의 태양처럼 강한 빛을 발했다.
공사는 1912년 6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간 진행됐는데, 건물이 완성된 이후 특별한 외관으로 화제가 된 이곳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높은 고도에 위치한 옥상의 공기가 거리의 공기보다 깨끗하다고 여겼고, 탁 트인 전망을 즐기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 이는 프랑스 파리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중의 하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철거되어 이후 흰색 창으로 교체되었지만, 빛이 주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은 백화점이 건립된 지 110년 이상 지난 지금 예술가 김수자의 손끝에서 다시 탄생했다.

갤러리 라파예트 파리 오스만에서 ‘호흡’을 만나다

김수자GL2 © Galeries Lafayette
김수자 작가는 갤러리 라파예트의 의뢰를 받아 자크 그루버의 최초 디자인처럼 돔 유리를 그녀의 작품 ‘호흡’으로 다시 한번 컬러풀하게 빛냈다. 유리 돔에 특수 필름의 일종인 회절 필름을 적용해 자연광을 무지개색으로 변환해 비추는데, 시간과 날씨, 계절, 사람들의 움직임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아 빛이 시시각각 퍼짐으로써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김수자 작가는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크리스털 궁전(Palacio de Cristal)에서 ‘호흡 ’시리즈를 처음 선보인 이후 2015년 퐁피두 메츠 센터, 2021년 리움 미술관 등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작품 ‘호흡’을 소개했다. 다수의 호흡 시리즈를 선보였지만, 이러한 규모의 장소 특정적 설치물은 파리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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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ooja Studio
매일 십만여 명이 방문하는 이 공간에서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빛에 집중시켜 감각적이고 명상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움직이는 작품인 ‘호흡’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무지갯빛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관람자이면서 주위 환경의 한 요소로 작품에 동참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작품을 관찰하다 보면 빛의 덧없음과 더불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무위의 개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논-두잉(Non-doing)'와 '논-메이킹(Non-making)’ 즉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상태를 통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
김수자GL
하지만 파리의 랜드마크이자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이 공간에 예술적 터치를 가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수자 작가는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 내부에서 돔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 웅장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본 유리 구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돔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술가로서 돔의 완벽함에 흥미를 느꼈지만 그렇기에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게다가 수많은 방문객과 상점이 만드는 소음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위해 두 돔 사이의 테라스 공간을 방문했을 때 대중에게 개방해 활성화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주변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복합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특히 파리라는 도시는 작가에게 의미가 깊다. 그녀는 “1984년 파리를 방문한 이래로 이 도시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매혹적인 도시 파리에서 작품 ‘호흡’을 선보이고 파리지앵들과 공유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다.
한 세기 이상의 시대를 초월해, 강하지만 섬세한 실로 과거와 현재를 엮어 빛나는 역사를 완성한 김수자 작가. 이는 그녀가 건립된 지 110년이 지난 지금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에 보내는 무지갯빛의 시적인 경의이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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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김수자프로필
ⓒ Giannis Vastardis, Kimsooja Studio

김수자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자 작가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서울과 파리 등을 주 무대로 활동해 왔다. 해외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그녀는 전 세계의 그녀는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에서 직물, 조명, 소리를 활용한 현장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1990년대 초반 ‘보따리’ 연작을 시작했으며, 이를 자신의 조형 언어로 삼아 공간과 사람 등 주변환경과 교감하며 다양한 작업을 펼쳐왔다. 1998년 제24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2013년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여했으며 40회가 넘는 현대미술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초청받은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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