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모나코에 관한 다섯 가지 흥미로운 사실

AS모나코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축구 천재’라 불리던 박주영(울산 현대)이 세 시즌 동안 몸담았기 때문이다. 박주영은 2008-09시즌부터 2010-11시즌까지 이 팀에서 세 시즌 동안 뛰며 리그 91경기에서 25골을 터뜨렸다. 그가 맹활약하면서 AS모나코는 그 기간 동안 ‘우리 팀’이 됐다. 물론, AS모나코는 박주영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크고 이야기가 많은 팀이다.

우리는 프랑스 팀 아냐!

AS모나코는 프랑스 리그앙 무대에서 뛰지만, 프랑스 팀이 아니다. 모나코 공국 소속이다. 모나코 공국을 연고로 하지만 프랑스 리그앙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이다. 모나코는 유럽 소국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국 리그와 컵 대회가 없으며,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유럽축구연맹(UEFA) 소속이 아니기에 월드컵이나 유러피언챔피언십(유로)에 출전하지 않는다. AS모나코는 프랑스 축구 시스템에 완전히 편입돼, 유럽 대항전에도 프랑스 대표로 나간다.

구단주가 ‘군주’였다고?

AS모나코는 2011년 12월에 모나코 스포츠 인베스트먼트에 지분 66.67%를 넘기며 인수되기 직전까지 그리말디 가문(Maison Grimaldi) 소유였다. 그리말디 가문은 모나코 공국을 통치하는 모나코 공작 알베르 2세가 수장이다. 결과적으로 AS모나코는 모나코 군주가 소유한 팀이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여전히 팀 지분 33.33%를 지녔다. 현재 최대 주주인 스포츠 인베스트먼트는 회장인 러시아 사업가 드미트리 류볼로블레프의 딸 예카테리나 류볼로블레바 소유고, 사실상 드미트리 회사다.

벵거가 만든 전성기

현재 FIFA 글로벌 축구 개발 위원장으로 일하며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르센 벵거는 AS모나코와 인연이 깊다. 그는 AS낭시와 이별한 뒤 1987년 AS모나코 지휘봉을 잡았다. 벵거는 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자신이 바라는 축구와 영입 리스트를 분명히 했다. 그는 원하던 글렌 호들, 파트릭 바티스통, 마크 하틀리를 손에 넣었고, 1987-88시즌 리그앙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88-89시즌에는 득점왕 조지 웨아(현 라이베리아 대통령)를 영입하며 3위를 차지했고, 1989-90시즌에도 같은 순위로 마쳤다. 벵거는 1990-91시즌에 팀에 프랑스컵을 안겼다. AS모나코는 벵거 시절(1987~1994)을 여전히 ‘전성기’ 중 하나로 기억한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왜 여기서 나와

벵거 시대를 돌아보면 우리는 낯익은 이름을 하나 더 만난다. 바로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클린스만은 1992년 인테르밀란을 떠나 AS모나코로 이적했다. 그는 AS모나코에서 두 시즌 동안 뛰면서 리그 65경기에 출전했고 30골을 터뜨렸다. 클린스만은 1992-93시즌에 리그 2위를 맛봤고, 1993-94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팀을 올려놓았다. 그는 1994년에 부상으로 두 달 동안 결장했고, 팀 동료들을 비판하면서 팀에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결국 계약 기간 1년을 남긴 상황에서 토트넘홋스퍼로 이적했다.

별칭은 ‘대각선’

AS모나코는 별칭이 많다. 모나코인이라는 프랑스어 표현 Les Monégasques와 구단 상징색인 적과 백을 뜻하는 Les Rouge et Blanc 그리고 모나코 대공궁이 딛고 선 큰 바위(62m)를 뜻하는 Le Rocher도 별명 중 하나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홈 유니폼의 적과 백을 가르는 대각선을 뜻하는 Les Diagonals이다. AS모나코 홈 유니폼은 여전히 대각선을 경계로 붉은색과 하얀색이 장식한다. 티에리 앙리도, 위르겐 클린스만도, 박주영도 이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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