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예술의 여정을 걷는 남프랑스 여행 코스

여행 아이디어

니스프로방스 (마르세유, 아비뇽, 엑상프로방스...)코트다쥐르문화 & 유산

High angle view of promenade by beach during sunset
© AdobeStock_AWL Images - High angle view of promenade by beach during sunset

소요 시간: 0 분게시일: 6 11월 2025

남프랑스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의 땅이 아니다. 수 세기 동안 이곳은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실험실이자 도전의 무대였다. 인상주의가 빛을 발견한 곳, 세잔이 집념으로 새로운 회화 언어를 개척한 곳, 피카소가 해방의 선을 그린 곳, 샤갈이 상징의 색채를 펼친 곳, 고흐가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한 곳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건축과 설치미술이 자연과 대화하는 곳. 이 모든 이야기가 남프랑스라는 이름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빛과 예술을 따라 남프랑스 여행을 떠나보자.

니스 – 빛의 바다 위에서

Parisleo
© Parisleo

니스는 남프랑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작점이다. 지중해 연안의 푸른 바다와 산맥이 맞닿은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의 발길을 붙잡아 왔다.

구시가지(Vieux Nice)를 걸으면 금세 이 도시가 가진 색채의 힘을 느끼게 된다. 주황빛 지붕, 파스텔톤 벽, 창문마다 매달린 세탁물, 시장의 활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살아 있는 캔버스다. 인상파 화가들이 발견한 ‘빛의 순간’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숨 쉬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붓을 들던 시절과 지금의 햇살은 다르지 않다.

그 빛의 도시에서 조금 벗어나 언덕 위에 자리한 샤갈 미술관(Musée Marc Chagall)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20세기 미술의 거장 샤갈은 “색채의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인상주의처럼 자연의 빛을 탐구하지 않았고, 입체파처럼 형태를 해체하지도 않았다. 그가 바라본 것은 인간의 꿈과 신화, 사랑과 신앙이었다.

샤갈이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성서 연작을 중심으로 미술관은 구성되어 있다. 창세기, 출애굽기, 아가서 같은 작품들은 단순히 종교화를 넘어선다. 그림 속 인물들은 공중에 떠 있고, 푸른 색조와 붉은 색채가 어우러져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다. 샤갈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이 마음속에 간직한 상징적 풍경을 그린 화가였다.

샤갈 미술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 경험을 극대화한다.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벽과 바닥을 물들일 때, 우리는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초월하여 내면으로 향할 수 있는지, 인상주의 이후 예술이 나아간 또 다른 길을 깨닫게 된다.

생폴드방스 – 삶과 예술이 공존하는 샤갈의 마을

A narrow street of Saint-Paul-de-Vence
© valarphoto, AdobeStock - A narrow street of Saint-Paul-de-Vence

니스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마을,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 언덕 위에 자리한 중세 요새 마을은 돌담과 성문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으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마다 화사한 꽃과 작은 갤러리들이 늘어서 있다.

20세기 들어 이곳은 예술가들의 은신처이자 영감의 터전이 되었다. 마을에는 아직도 샤갈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그는 생의 후반부를 이곳에서 보냈고, 연인들, 생폴드방스의 풍경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무덤도 마을 언덕 묘지에 있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으며 그를 기린다.

생폴드방스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샤갈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무대였다. 마티스, 레제, 미로, 브라크, 피카소 같은 거장들이 이곳을 오가며 작업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작은 카페 ‘라 콜롬브 도르(La Colombe d’Or)’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작품들이 아직도 걸려 있는데, 식당 벽에 무심히 걸린 그들의 그림들은 마치 생활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진 듯한 감각을 준다.

마을 근처에 자리한 매그 재단(Fondation Maeght)은 이 분위기를 더 확장한다. 이곳은 1964년 개관한 현대미술관으로, 자코메티, 칼더, 미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전시한다. 정원에 놓인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조각들은 마치 돌담과 하늘 사이를 떠돌며 인간 존재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듯하다. 칼더의 거대한 모빌은 바람에 흔들리며 예술이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자연과 대화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생폴드방스는 예술을 소비하는 장소가 아니라, 예술과 일상이 뒤섞인 공간이다. 여행자는 골목을 걸으며 이름 모를 작가의 작은 갤러리에 들어가고, 다시 나와서는 세계적인 작품 앞에 서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예술이 거대한 미술관 벽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사람들 속에 살아 숨 쉰다.

앙티브 – 피카소가 찾은 태양과 자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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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해안 도시 앙티브(Antibes)는 남프랑스의 따뜻한 햇살과 바다의 푸른빛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도시를 감싸는 성벽 위로 걸으면, 파도와 돌담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예술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시기를 지나 피카소는 이곳에 머물렀다. 그는 전쟁의 어두운 기억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찾고자 했고, 앙티브는 그에게 빛과 자유의 공간이었다. 피카소가 머문 곳은 바로 지금의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Musée Picasso Antibes)으로, 당시 그리말디성(Château Grimaldi)이었다. 이 성의 작업실에서 그는 놀라운 속도로 그림을 쏟아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즐거운 생활(La Joie de Vivre, 1946)>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태양 아래에서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며, 지중해의 바다와 바람 속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피카소의 다른 시기의 그림들이 종종 긴장감과 실험적 파괴로 가득했다면, 이 시기의 그림은 밝고 경쾌하며 아이처럼 순수하다. 전쟁의 상처를 뒤로하고 다시 삶을 찬미하고자했던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것이다.

앙티브에서 피카소는 회화뿐만 아니라 도자기 작업에도 몰두했다. 흙과 불, 그리고 손의 감각을 통해 탄생한 도자기는 그의 예술 세계에 또 다른 확장을 가져왔다. 단순한 선과 원시적인 문양이 새겨진 접시와 항아리에는, 예술이 꼭 캔버스에만 존재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는 자유로움이 담겨있다.

앙티브의 성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왜 피카소가 이곳에서 ‘해방’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늘 변화를 갈망했고, 앙티브에서의 시간은 예술을 다시 ‘삶의 기쁨’으로 되돌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엑상프로방스 – 세잔의 고집과 집념

HEETAE JUNG
© HEETAE JUNG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는 ‘세잔의 도시’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다. 좁은 골목길, 분수와 광장, 그리고 주변의 언덕과 산 - 모든 풍경이 그의 그림 속에 담겨 있다. 도시 외곽에 자리한 세잔의 아틀리에(Atelier de Cézanne)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작업대 위엔 여전히 사과와 병, 석고상, 그리고 그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들이 남아 있다.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활동했지만, 곧 그들과 길을 달리했다. 인상주의가 순간의 빛과 색채를 포착하는데 집중했다면, 세잔은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구조와 질서’를 찾아내고자했다. 그는 같은 사물을 끊임없이 반복해 그렸는데, 특히 생트 빅투아르 산(Montagne Sainte-Victoire) 연작이 대표적이다. 이 산은 그의 집념의 대상이자 실험장이었다.

그의 풍경화는 단순히 산을 그린 것이 아니라, 색채와 면을 쌓아 올리며 입체적인 구조를 드러냈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그의 시도는 훗날 입체파의 피카소와 브라크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 “세잔은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는 피카소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엑상프로방스 시내에는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 있다. 세잔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과 학교, 자주 찾아갔던 카페 그리고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는 언덕까지, 그의 시선과 겹치는 풍경을 마주한다. 도시 곳곳에 세잔의 흔적이 스며있어, 엑상프로방스를 걷는 것은 곧 세잔의 회화적 탐구를 체험하는일이 된다.

샤토 라 코스트 – 자연 속의 현대미술

HEETAE JUNG
© HEETAE JUNG

엑상프로방스근교에 자리한 샤토 라 코스트(Château La Coste)는 포도밭, 건축, 그리고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다. 와이너리의 전통과 최첨단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실험실이다.

넓은 포도밭과 언덕 사이를 걷다 보면, 세계적인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명상적 공간의 미술관, 프랭크 게리의 유리 파빌리온, 장 누벨의 건축물,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조각, 리처드 세라의 강철 구조물이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샤토 라 코스트의 특별함은 예술이 건물 안에 갇히지 않고, 자연과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는 점이다. 산책하듯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술 작품과 마주하게되고, 그 순간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이 된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술이 더 이상 그림이나 조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대미술은 공간, 빛, 건축, 자연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다. 샤토 라 코스트는 인상파가 발견한 빛의 순간에서 출발한 남프랑스 예술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레보드프로방스 & 빛의 채석장 – 빛의 극장

Culturespaces, Eric Spiller
© Culturespaces, Eric Spiller

레보드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는 절벽 위에 세워진 중세 마을이다. 좁은 골목과 성곽에서 중세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바로 아래 채석장에는 전혀 다른 시대의 예술 공간이 자리한다. 그것이 바로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ères)이다.

이 거대한 채석장은 지금은 ‘빛의 극장’으로 변신했다. 암벽 전체에 프로젝션 맵핑이 펼쳐지고, 고전 명화들이 음악과 함께 살아 움직인다. 세잔의 정물화가 벽을 따라 움직이고, 반 고흐의 별밤이 천장을 가득 메우며, 모네의 수련이 바닥에서 일렁인다.

이곳의 경험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예술과 기술이 만나 만들어낸 몰입형 체험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남프랑스에서 발견한 빛은, 이제 21세기에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재탄생한다. 빛의 채석장에서 우리는 예술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와 언어를 찾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아를 & 생레미드프로방스 – 고흐의 흔적을 따라서

Office de Tourisme d'Arles
© Office de Tourisme d'Arles

아를(Arles)은 고흐의 도시다. 1888년, 고흐는 이곳에서 가장 왕성한 작업 시기를 보냈다. <노란 집>, <밤의 카페 테라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여인> 등이 바로 이 시기에 탄생했다. 오늘날에도 아를의 거리와 카페는 그의 그림 속 풍경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여행자는 마치 고흐의 그림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고흐의 삶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불안과 광기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귀를 자르는 사건 이후, 인근 생레미드프로방스의 생폴 정신병원(Saint-Paul-de-Mausole)에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올리브 나무 같은 걸작을 남겼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풍경은 그의 내면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격렬한 선과 소용돌이로 변주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소용돌이였다.

아를과 생레미를 따라 걷다 보면, 예술이란 단순히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내는 언어임을 깨닫게 된다. 고흐의 붓질은 그의 치유이자 고백이었다.

그리고 아를에는 한국의 거장 이우환 미술관도 있다. 그의 작품은 돌과 철판, 여백과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과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의 미학은, 빛을 쫓던 인상파의 실험과 다른 결의 현대적 탐구라 할 수 있다. 이우환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고요는, 고흐의 격렬한 내면과는 대조적이지만, 결국 예술이란 인간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려는 같은 열망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아비뇽 – 전통의 붕괴와 혁신의 시작

OT Avignon
© OT Avignon

마지막 여정은 아비뇽(Avignon)이다. 교황청의 웅장한 성벽은 중세 종교 권력의 상징으로, 도시 전체를 압도한다. 그러나 예술사에서 아비뇽은 또 다른 상징을 지닌다.

14세기, 교황청은 로마가 아닌 아비뇽에 자리했다. 당시 로마의 혼란을 피해 이곳으로 교황이 거처를 옮기면서, 아비뇽은 70여 년간 서방 세계의 종교·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교황청 건물은 요새처럼 거대하고 위압적이며, 중세 권위의 상징 그 자체였다. 돌벽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권력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이 공간은 자유와 창조의 무대가 되었다. 매년 여름 열리는 아비뇽 연극제(Festival d’Avignon)가 바로 그것이다. 1947년 연출가 장 빌라르(Jean Vilar)가 시작한 이 축제는 교황청의 웅장한 광장을 배경으로 다양한 연극과 무용,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예술 축제 중 하나로 성장했다. 과거 교황의 권위가 울려 퍼지던 공간에서, 이제는 가장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창작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비뇽은 교황청이라는 역사적 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창작의 장으로 전환시켰다. 이곳에서는 전통과 실험이 공존한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 예술이 고전적 규범을 중시했다면, 아비뇽은 오히려 그 규범을 깬 무대가 되었다. 연극뿐 아니라 현대 무용, 음악, 시각예술까지 다양한 장르가 축제 속에서 서로 섞이고, 관객과 배우의 경계마저 허물어진다.

아비뇽의 거리를 걸으면 축제 포스터와 퍼포먼스가 도시 전체를 물들이고, 좁은 골목에서 열린 작은 공연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권위의 공간이 자유의 공간으로, 과거가 현재로, 전통이 실험으로 바뀌는 장면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바로 아비뇽의 매력이다.

변화와 도전의 땅, 남프랑스

Richard Haughton
© Richard Haughton

니스의 빛, 생폴드방스의 예술적 공동체, 앙티브의 피카소,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샤토 라 코스트의 현대미술, 레보드프로방스의 빛의 극장, 아를과 생레미의 고흐, 그리고 아비뇽까지…남프랑스는 예술의 역사와 현재가 겹치는 땅이다.

이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 어떻게 시대마다 자신을 새롭게 갱신하며, 변화와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지를 체험하는 여정이다.

남프랑스의 햇살 아래에서 우리는 결국 깨닫게 된다. 예술이란 언제나 변화 속에서 피어나는 또 하나의 삶이며, 인간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By Heetae JUNG 정희태

와인과 사랑에 빠져 2009년 처음 프랑스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프랑스 국가 공인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여 활동 중이다.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미술관>,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디스이즈파리> 총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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