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에서 샤갈을 만나고, 마그 재단에서 예술의 미래를 걷다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를 여행하다 보면 니스와 칸 사이의 화려한 해변 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언덕 위에 갈색 석조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고, 오래된 성벽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 올리브나무와 사이프러스 사이로 지중해의 빛이 스며드는 이 마을의 이름은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다.
오늘날 이곳은 흔히 ‘예술가의 마을’로 불린다. 하지만 생폴드방스의 출발점은 예술이 아니었다. 중세부터 국경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로 발전한 요새 도시였고, 14세기 후반 세워진 중세 성벽의 흔적으로 두 개의 탑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오늘날 마을의 독특한 실루엣을 만드는 보루형 성벽은 프랑수아 1세의 명으로 1544년경 착공해 1547년 완성됐다.
그래서 이 마을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어는 어쩌면 ‘예술’보다 ‘성벽’에 가깝다. 군사도시였던 곳에 시간이 흐르면서 화가들이 모여들었고, 결국 그들의 이름이 마을의 역사와 나란히 놓이게 됐다는 것. 생폴드방스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변화에 있다.
요새 마을에 화가들이 찾아오다

생폴드방스에 예술가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다.
1920년대 초 폴 시냐크(Paul Signac), 라울 뒤피(Raoul Dufy), 샤임 수틴(Chaïm Soutine) 등이 이곳을 찾았다. 그들을 끌어당긴 것은 화려한 문화시설이 아니었다. 오래된 석조 건물과 좁은 골목,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 그리고 남프랑스 특유의 강렬한 빛이었다. 이후 마티스, 피카소, 레제, 브라크, 칼더 같은 거장들도 생폴드방스를 찾았다.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사랑방이 생겼다. 그 중심에 있었던 곳이 바로 라 콜롱브 도르(La Colombe d’Or)다.
1920년 생폴드방스 출신 폴 루(Paul Roux)는 ‘르 로뱅송(Le Robinson)’이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을 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빵 바냐(참치와 채소에 올리브오일을 더한 니스식 샌드위치)와 피살라디에르(양파와 멸치, 올리브 등을 올린 남프랑스식 납작빵) 같은 프로방스 음식을 먹고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1932년 폴 루와 아내 바티스틴(Baptistine), 애칭 티틴(Titine)은 이곳을 작은 여관으로 바꾸고 이름을 라 콜롱브 도르로 바꿨다. 그리고 이 작은 여관은 곧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가 됐다. 마티스와 레제, 피카소, 칼더, 브라크, 마르크 샤갈 등이 이곳을 찾았다. 폴 루는 화가들과 친구가 됐고, 그들의 작품은 식당과 정원을 장식했다.
그 결과 라 콜롱브 도르는 일반적인 호텔이나 레스토랑과는 다른 장소가 됐다. 그림은 전시를 위해 걸린 것이 아니라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놓였다. 오늘날 생폴드방스에서 이곳을 찾으면 ‘미술관 안에 들어온 레스토랑’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이 일상 속에 스며들던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자주 찾았던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 샤갈이었다.
샤갈이 사랑한 생폴드방스

마르크 샤갈은 1948년 미국에서 프랑스로 돌아와 처음에는 파리 근교 오르주발(Orgeval)에 머물렀다. 1949년 가을 방스(Vence)에서 몇 달을 지낸 뒤, 1950년 이곳에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이후 1966년 아내 바바와 함께 생폴드방스로 옮겨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샤갈은 “나를 지중해 연안으로 이끌어준 운명에 감사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샤갈과 아내 발렌티나 브로드스키, 애칭 바바(Vava)는 마을 밖 언덕에 집을 지었다. 이름은 라 콜린(La Colline) 이었다.
당시 이미 70대 후반이었던 샤갈에게 이곳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프랑스와 미국, 이스라엘 등에서 다양한 주문을 받고 있었고, 회화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태피스트리 등 여러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가 생폴드방스에서 남긴 작품 가운데 〈Le Couple dans le paysage bleu〉, ‘푸른 풍경 속 연인’은 이 시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푸른 하늘 아래 한 남자가 여인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두 사람 주변에는 꽃과 동물 같은 샤갈 특유의 이미지가 떠 있다. 그 아래로는 생폴드방스의 지붕과 성벽이 펼쳐진다. 실제 마을의 풍경을 바탕으로 했지만, 화면 속 생폴드방스는 현실의 풍경과는 조금 다르다. 마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연인과 꽃, 동물이 떠다니는 꿈의 무대가 된다.
샤갈에게 생폴드방스의 풍경은 눈앞에 보이는 장소인 동시에 사랑과 기억을 불러내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서는 실제 성벽과 지붕 위로 연인이 떠오르고, 꽃다발과 새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현실의 마을 위에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겹쳐놓은 것이다. 샤갈은 이곳에서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냈다. 라 콜롱브 도르와 카페 드 라 플라스(Café de la Place)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그중에는 훗날 마그 재단을 만든 에메 마그와 마르그리트 마그 부부도 있었다.
1985년 3월 28일 샤갈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마지막 안식처는 자신이 사랑했던 이 마을의 공동묘지가 됐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생폴드방스의 묘지에 그는 아내 바바와 함께 잠들어 있다. 오늘 마을을 걷다 보면 샤갈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그가 살았던 라 콜린은 현재 사유지라 내부를 볼 수 없지만, 마을에는 그의 작품을 재현한 표지와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학교 건물에는 샤갈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이디 멜라노가 제작한 〈Le Fleuve vert〉, ‘녹색 강’ 모자이크도 남아 있다. 샤갈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6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하지만 샤갈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마을 구시가지 밖으로 이어진다.
그의 친구였던 마그 부부가 만든 특별한 예술 공간, 마그 재단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만들려 한 것이 아니었다
에메 마그(Aimé Maeght)와 마르그리트 마그(Marguerite Maeght)는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호안 미로, 조르주 브라크, 알베르토 자코메티, 알렉산더 칼더, 페르낭 레제, 마르크 샤갈 등이 그들의 친구이자 협업자였다. 마그 부부는 작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가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47년에는 앙드레 브르통과 마르셀 뒤샹이 기획한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가 그들의 갤러리에서 열리기도 했다.
두 사람이 생폴드방스에 만들고 싶었던 공간 역시 기존의 미술관과는 달랐다.
작품을 벽에 걸고 관람객이 앞에 서서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예술가가 건축과 정원에 직접 참여해 작품과 공간이 함께 완성되는 장소였다. 이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는 주제프 류이스 세르트(Josep Lluís Sert)였다. 카탈루냐 출신인 세르트는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일했고, 이후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학장을 지낸 근대건축의 중요한 인물이다. 호안 미로의 추천으로 마그 부부와 인연을 맺은 그는 예술가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재단을 설계했다. 세르트는 지중해의 흰 벽과 중정, 테라스 같은 전통적인 공간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자연광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고, 정원과 테라스, 중정을 전시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그래서 마그 재단에서는 전시실을 나와 정원으로 이동해도 관람이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실내에서 보았던 작품을 자연과 빛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다. 1964년 7월 28일 문을 연 마그 재단의 개관식에는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가 참석했다. 그가 남긴 “이곳은 미술관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 공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마그 재단은 작품을 한곳에 모아놓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술과 건축, 자연이 서로 관계를 맺도록 만든 장소였기 때문이다.
미로의 미궁, 자코메티의 인간
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호안 미로의 〈Labyrinthe Miró〉, ‘미로의 미궁’이다.
미로는 재단을 위해 세라믹, 카라라 대리석, 철, 청동, 콘크리트 등을 사용해 거대한 야외 작품군을 만들었다. 작업은 1963년부터 1968년, 그리고 1973년까지 이어졌다. 관람객은 흰색 선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미로의 조각 사이를 걷는다. 여기서는 ‘조각을 본다’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다. 조각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사이를 직접 지나가기 때문이다. 새와 도마뱀, 연, 탑처럼 보이는 형상들은 정원 곳곳에 놓여 있다. 흰 벽과 나무, 하늘 사이에 조각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어디까지가 정원이고 어디부터가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반대편에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안뜰(Cour Giacometti)이 있다. 1959~1960년에 제작된 자코메티의 주요 석고 조각들이 자리한 곳으로, 〈걸어가는 사람〉, 〈서 있는 여자〉, 〈큰 머리〉 등을 만날 수 있다. 길고 가느다란 인간 형상은 생폴드방스의 밝고 강렬한 자연과 묘한 대비를 만든다. 미로의 작품이 풍경 속으로 퍼져나가는 듯하다면, 자코메티의 인간은 그 풍경 속에 홀로 서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서로 전혀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 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작품만이 아니라 건축과 정원까지 함께 설계됐기 때문이다.
샤갈의 삶이 한 화면에 들어오다
샤갈에게 마그 재단은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장소였다.
에메 마그와 샤갈의 인연은 1947년 파리에서 시작됐다. 마그는 샤갈의 작품을 전시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오랜 협업과 우정으로 이어졌다. 재단을 만들면서 마그 부부는 샤갈에게 자신들을 위한 대형 작품을 부탁했다.
그 결과가 〈La Vie〉, ‘인생’이다.
196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가로 406cm, 세로 296cm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다. 한 화면 안에 샤갈의 인생이 회오리처럼 펼쳐진다. 러시아에서의 기억과 망명, 파리에서의 삶, 벨라와의 결혼, 딸 이다의 탄생, 음악가와 곡예사, 예술가로서의 삶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그의 후기 삶에서 중요한 존재였던 바바도 화면 속에 자리한다. 샤갈은 자신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지 않는다. 기억나는 장면들을 한 화면에 겹쳐놓는다. 그래서 〈La Vie〉를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자서전을 읽는 것보다 꿈속에서 과거의 장면들을 차례로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정원으로 나가면 또 다른 샤갈을 만난다. 바로 〈Les Amoureux〉, ‘연인들’이다.
1964~1965년에 제작된 이 모자이크는 마그 재단 서점 외벽에 자리한다. 샤갈이 모자이크라는 재료로 처음 제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이디와 리노 멜라노(Heidi & Lino Melano)가 제작에 함께 참여했다. 작품은 에메 마그와 마르그리트 마그에게 헌정됐다. 푸른 하늘과 연인, 꽃 같은 샤갈 특유의 이미지가 이번에는 캔버스가 아니라 건축의 일부가 됐다.
생폴드방스에서 샤갈이 사랑과 기억을 풍경 속에 그려냈다면, 마그 재단에서는 그 세계가 모자이크와 건축으로 이어진다.
브라크의 물고기와 빛의 수반
마그 재단에서는 작품이 꼭 캔버스나 조각일 필요도 없다.
조르주 브라크의 〈Les Poissons〉, ‘물고기들’은 재단의 대형 수반에 설치된 모자이크 작품이다. 브라크는 물과 모자이크, 건축을 하나의 장면으로 묶었다. 햇빛이 수면 위에서 흔들릴 때 모자이크의 형태도 함께 달라 보인다.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물고기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물 위에 반사되는 빛과 주변의 건축, 정원의 풍경까지 한 화면처럼 들어온다.
이런 경험 때문에 마그 재단에서는 작품과 공간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과거에서 오늘의 미술까지
마그 재단은 1964년에 완성되고 끝난 프로젝트가 아니다.
현재도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드로잉,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여러 시대의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2026년 여름에는 미국 추상미술의 거장 엘즈워스 켈리(Ellsworth Kelly)의 〈Ellsworth Kelly – At the Edge of Water〉가 6월 27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열리고, 사진가 페터 크나프(Peter Knapp)의 〈The Era of Courrèges〉도 소개된다. 20세기 거장들이 건축과 정원에 작품을 남긴 공간에서 새로운 전시가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그 재단은 과거의 예술을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작품과 시선을 받아들이면서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빛을 따라 걷는 마을
생폴드방스의 이야기는 성벽에서 시작해 예술가들의 삶으로 이어졌다.
샤갈은 이곳에서 사랑과 기억을 그렸고, 미로와 자코메티, 브라크는 마그 재단의 정원과 건축 속에 각자의 세계를 남겼다. 그래서 생폴드방스와 마그 재단을 함께 둘러보면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성벽 위로 내려앉은 지중해의 빛을 바라보던 예술가들이 그 풍경을 각자의 언어로 옮겼고, 마그 재단은 그 작품들을 다시 빛과 정원 속에 놓았다. 샤갈에게 그것은 사랑과 기억이었고, 미로에게는 정원 속에서 움직이는 형태였으며, 자코메티에게는 풍경 속에 홀로 선 인간이었다. 브라크에게는 물 위에서 흔들리는 빛과 물고기였다.
생폴드방스는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마을이고, 마그 재단은 그들이 바라본 세계를 공간으로 확장한 장소다. 두 곳을 함께 걷다 보면 ‘예술가의 마을’이라는 익숙한 수식어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생폴드방스의 모습이 보인다.
중세의 성벽과 지중해의 빛,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본 예술가들의 시선이 한 장소에서 겹쳐지는 마을이다.
By Heetae JUNG 정희태
와인과 사랑에 빠져 2009년 처음 프랑스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프랑스 국가 공인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여 활동 중이다.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미술관>,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디스이즈파리> 총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