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소개하는 여행: 레 자크(Les Arcs) 스키장에서 만나는 건축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발자취

1967년부터 건축가 샤를로트 페리앙과 레 자크 스키장의 창립자 로제 고디노(Roger Godino)는 손을 잡고 이 대표적인 알프스 스키 리조트를 함께 설계했다. 두 사람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심에 둔 산악 휴양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자동차가 없는 이 스키장은 도시의 복잡함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건축을 지향한다.

레 자크는 오트 타랑테즈(Haute-Tarentaise) 지역에 세워진 스키 리조트로, 벌써 몇 해 전 개장 50주년을 맞이했다. 아크 1600(Arc 1600)의 숙소는 주로 개인 거주용으로 설계된 반면, 아크 1800(Arc 1800)의 숙소는 휴가철 임대를 염두에 두고 좀 더 아담한 규모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누구보다 산을 사랑한 인물이다. 그녀의 손을 거친 레 자크의 건축은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특히 그녀는 협소한 공간을 기막히게 다루는 재능을 지닌 디자이너였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건축을 설계할 때 언제나 내부에서부터 구상을 시작했다. 외관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기존의 건축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그녀의 건축물에서는 넓은 유리창을 통해 내부와 외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실내 공간과 산의 풍경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 큰 창은 실내 공간을 자연과 조화롭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그 이유를 뚜렷이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것이 페리앙 건축의 마법이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장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철저히 거부했다. 그녀에게 있어 모든 설계는 사용자의 필요와 활용 목적에 따라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이뤄져야 했다. 식기 더미의 높이나 물병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고려하여 디자인했다. 마지막으로 레 자크를 방문했을 때 스키화의 높이가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이유로 수납장의 높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벽면에 칠해진 흰색 회반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는 정확한 음향 효과를 위한 설계이며, 바닥재 선택 또한 마찬가지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설계에 있어 어떤 것도 우연에 맡기지 않았다. 

촉박했던 공사 일정에 맞추기 위해 페리앙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폴리에스터로 된 조립식 욕실을 도입한 것이다. 혁신적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이 욕실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성과 내구성을 모두 갖춘 공간으로 재조명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박물관에 소장될 만큼 높은 가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주방은 개방되어 있으며, 식사 전달용 창문을 통해 거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조였다. 오늘날 익숙한 많은 공간 아이디어들은 그녀의 혁신적인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 

레 자크 스키장의 설계에는 그녀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엘리베이터 대신 경사로를 설치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는 1930년대부터 이어온 그녀의 주거 공간과 레저용 건축을 중심으로 펼쳐온 작업의 주요 원칙 가운데 하나다. 그녀가 86세까지 20년간 헌신한 이 프로젝트는 그녀의 모든 아이디어가 응축된 결과이자 건축 인생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페리앙은 각 주거 공간이 서로 마주 보지 않도록 배치함으로써 어느 곳에서나 탁 트인 조망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비록 그녀가 떠난 후에는 통제 없이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레 자크는 지금까지도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업은 대중을 위한 휴양형 주거지 분야에서 하나의 기준이 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 계획부터 커트러리 선택까지, 한 여성 건축가가 모든 것을 총괄한 사례는 레 자크가 유일하다. 레 자크는 곧 샤를로트 페리앙이라는 이름을 건축사에 새긴 살아 있는 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