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의 건축 걸작, 마르세유 시테 라디유즈

Cité Radie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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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시테 라디유즈
© Seosum - 마르세유 시테 라디유즈

소요 시간: 0 분게시일: 24 2월 2026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가 마르세유의 하늘 아래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 지붕 아래 담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는 그 답을 콘크리트로 빚어 올렸다. 주거와 교육, 상점과 커뮤니티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하나의 완전한 도시. 근대 건축의 역사를 새로 쓴 이 건물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주상복합의 원형이자,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삶의 방식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유산이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시테 라디유즈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마르세유 시테 라디유즈
© Offgstudio, Eunju Kim - 마르세유 시테 라디유즈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마르세유는 폭격 피해로 인해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를 겪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전후 재건을 위해 르코르뷔지에에게 공동주택 설계를 의뢰했고, 그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그리고 건축과 도시 계획에서 자연의 역할 등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집대성한 자신의 주거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주거, 교육, 커뮤니티 등의 모든 기능을 하나로 모은 ‘수직 도시’를 마르세유에 구현한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시테 라디유즈(Cité Radieuse)’다. 프랑스의 르제(Rezé)뿐 아니라 독일의 베를린 등 유럽의 다른 도시에도 이와 동일한 건축 형식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을 지었으나 마르세유에 있는 시테 라디유즈가 첫 시도였다. 이는 근대 건축의 혁신적 실험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현대 주상복합의 뿌리이기도 하다.

마르세유 시테 라디유즈
© Offgstudio, Eunju Kim - 마르세유 시테 라디유즈

호텔과 레스토랑, 건축 전문 서점, 편집숍 등이 있는 3층과 4층은 누구나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또한 마르세유관광안내소를 통해 예약하면 가이드 투어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643호를 방문할 수 있다. 643호로 들어가자마자 정면으로 거실이 보인다. 햇살이 들어오는 큰 창문은 근사한 산을 품고 있다. 현관 옆은 주방이다. 언뜻 작은 공간 같지만, 가이드가 장갑을 끼고 U자형 주방의 선반과 서랍을 하나둘 열자 숨어 있던 갖가지 기능이 드러난다.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세심하게 설계했어요. 밖의 음식 및 얼음 배달함이 이렇게 주방과 연결되고, 빵을 자르는 나무 도마도 서랍식으로 여닫을 수 있죠. 동선이 효율적이라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이런 주방이 보편적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마르세유 르코르뷔지에 시테 라디유즈
© Offgstudio, Eunju Kim - 마르세유 르코르뷔지에 시테 라디유즈

마치 내가 살 집처럼 구석구석 살펴보다 다음 투어 예약자를 위해 옥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가이드는 이어 말한다. “옥상은 조깅 트랙과 체육관, 야외 극장, 어린이용 수영장 등으로 쓰인 공용 공간이었어요. 체육관은 마르세유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인 오라이토(Ora-ïto)가 만든 현대 예술 공간 ‘마모(MAMO)’로 변모해 가끔 전시가 열릴 때만 개방되고 있죠. 야외 극장은 여전히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요. 외부인 출입 금지인 저쪽 구역은 어린이용 수영장이 딸린 유치원이에요. 다만, 르 코르뷔지에 호텔 투숙객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답니다. 그리고 여기 작은 정원도 있어요.”

마르세유 르코르뷔지에 시테 라디유즈
© Offgstudio, Eunju Kim - 마르세유 르코르뷔지에 시테 라디유즈

옥상에서는 샤넬의 2024/25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가 개최되기도 했다. 옥상의 한쪽에는 지중해가, 다른 쪽으로는 칼랑크 국립공원의 산악 지대가 드넓게 펼쳐진다. 여기서는 마르세유의 산과 바다를 모두 아우를 수 있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대성당의 성모마리아상이 저 멀리 반짝이는 것도 보인다.

 

마르세유 르코르뷔지에 시테 라디유즈
© Offgstudio, Eunju Kim - 마르세유 르코르뷔지에 시테 라디유즈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가는 도중에 한 층에서 아빠와 아이 그리고 반려견이 탑승한다. 아이가 해맑게 활짝 웃으며 “봉주르Bonjour(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도 똑같이 미소 지으며 마음을 전한다. 여기서 또 한 번 밝은 색조가 덧칠되면서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밀려온다.

🔎마르세유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고싶다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 2026년 3월호에서 마르세유 특집 기사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By Minjoo KIM 김민주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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