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년 역사를 간직한 축제, 릴의 벼룩시장 브라드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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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ent JAVOY Hello Lille
© Laurent JAVOY Hello Lille

소요 시간: 0 분게시일: 27 8월 2026

여름 방학이 끝나갈 9월 초, 프랑스 전역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의 멜랑콜리로 가득할 때, 오드프랑스 지역 노르주의 릴은 도시의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9월 첫째 주말에 매년 2백50만 명의 참관객과 여행객이 방문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 ‘브라드리’가 열리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빈티지 물품과 인파로 가득한 골목길, 거리 공연과 먹거리로 유명한 릴의 브라드리를 함께 살펴보자.

브라드리의 풍경

Emma Ezzeddine Hello Lille
© Emma Ezzeddine Hello Lille

유럽 최대 규모라는 칭호에 어울리게 이틀 동안 릴의 절반은 거대한 벼룩시장으로 변한다. 9월 첫째 주 금요일 저녁부터 구도심(Vieux-Lille), 중심가(le Centre), 와젬(Wazemmes) 세 구역의 거리에 차량 통행이 통제되고, 판매자들의 진열대와 천막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2025년에는 총 51km에 이르는 판매 구역을 무려 5,200명이 넘는 판매자가 채웠다. 이곳에서는 이들을 속어로 '브라되르 (Bradeurs)'라 부른다. 브라되르는 이틀 동안 삶의 한 조각이 담긴 물건에 농담과 친절을 곁들여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이틀간 일반 상점과 슈퍼마켓도 브라드리에 맞춰 세일을 하지만, 이 축제의 본질은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중고거래에 있다. 매대에 진열된 물건은 다양하고 간혹 놀랍기까지 하다. 여타 벼룩시장에 나올 만한 빈티지 가구나 그릇, 안 입는 옷가지와 책 등이 대부분이지만, 그 옆에서 간혹 18세기 도금된 현미경, 난해한 조각상, 대장간에서 쓰던 거대한 풀무, 망가진 신호등을 찾을 수 있다. 왜 하필 이 도시에 거대한 중고장터가 자리 잡게 됐을까?

브라드리의 역사 

Hanbyeol JEON
© Hanbyeol JEON

릴은 11세기부터 낮은 늪지대에 생성된 도시로, 중세에 직물 제작과 도매에 특화되어 빠르게 금융 및 무역 주요 거점으로 성장했다. 다른 큰 상업도시처럼 릴은 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인 각종 행사를 통해 지역 화합을 공고히 했다. 13세기의 6월 예배 행렬과 사순절 시기에 마상창 시합과 연회를 선보이는 ‘에피네트 Epinette’ 축제, 16세기부터 시작된 레이스 제조공과 직조업 종사 노동자를 위한 ‘브로클레 broquelet (레이스 제작에 필요한 방추) 축제’ 등, 릴의 1년은 다양한 연례행사로 수놓아져 있었다. 하지만 긴 역사의 흐름을 뚫고 살아남은 전통 행사는 브라드리가 거의 유일하다.

브라드리의 근원을 찾으려면 12세기까지 올라가야 한다. 1127년 릴에 정기시 (franche-foire 定期市)가 처음 열리게 되면서, 매년 8월 중순에서 9월 초까지 릴 성벽 안에서 유럽 각지의 도소매 상인도 면세 혜택을 누리며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 장날의 둘째 주 월요일에 가정부나 집사 등 고용인이 고용주가 더는 사용하지 않는 옷가지나 잡동사니를 팔아 돈을 벌면서 본격적으로 벼룩시장의 성격을 띠게 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언제부터 시작된 관행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ILL 1)

브라드리는 근세 동안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다가 릴이 산업 도시로 대두하는 19세기에 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도심에 모여 살던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에겐 최대한 싸게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때 브라드리는 월요일 새벽 4시에서 오후 2시까지 운영되었지만, 20세기 초부터 일요일 저녁에서 월요일 아침까지로 앞당겨졌다. 릴 시는 이 월요일을 특별 공휴일로 지정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릴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했으며, 수년간 도시 전체가 영양실조와 궁핍에 시달렸다. 전쟁 시기 중단됐던 브리드리는 45년에 다시 복구됐지만, 서민들 사이의 거래라는 근본에서 멀어져 상점과 기업의 세일기간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1968년 5월 혁명을 기점으로 젊은 세대가 시장 만능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벼룩시장을 부활시킨다. 한창 활발하던 민간 라디오 방송이 릴로 몰려들어 브라드리를 자유 토론의 장이자 사회운동의 성격을 띤 서민의 축제로 프랑스 전역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6년에 릴 시장 피에르 모로아 (Pierre Mauroy)가 ‘브라드리 월요일’ 공휴일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지인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행사의 시작을 토요일로 앞당기며 완성된 것이 현재의 브라드리이다.

Focus : 브라드리라는 이름의 유래

‘브라드리’라는 단어의 어원 또한 확실치 않다. 가장 그럴듯한 주장은 브라드리 (Braderie)가 플람스어(플란데런 지역에서 쓰이는 저지 프랑크어 방언) braaden (굽다)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1446년 릴 시청 칙령에 술집 주인 두 명이 정기시 기간에 고기나 생선 구이, 즉 ‘브라드리’를 가게 앞 가판대에서 파는 것을 허가해 달라 요청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기시에서 각종 구이요리가 유행한 것은 훨씬 더 전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사료에도 이 기간에 가금류와 청어 구이 등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자주 등장한다.

브라드리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Laurent Javoy Hello Lille
© Laurent Javoy Hello Lille

토요일 8시부터 일요일 저녁 6시까지 30시간을 잘 배분해야 하는 이 거대한 축제는 준비를 철저히 할수록 더욱 편하게 즐길 수 있다. 행사 전날부터 주차가 매우 어려우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역철도에서 브라드리 특가 혜택으로 저렴한 기차표를 살 수 있다. 부피가 큰 물건을 담을 수 있게 배낭에 에코백을 충분히 넣어두고, 상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카드 단말기를 쓰지 않으니 현금은 미리 동전으로 바꿔둔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관광 안내소에서 브라드리 구역이 표시된 지도를 가져온다.

브라드리는 공식적으로 토요일 8시에 시작하지만 베테랑 참가자는 새벽에 도착해 최상급의 물건을 선점한다. 하지만 분위기를 즐기는 게 목적이라면 9시 전후로 시내에 도착하면 충분하다. 토요일 저녁은 시내 곳곳에서 야외 콘서트가 열린다. 일요일은 느긋하게 못 본 구역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자. 보통 일요일 오후 두 시 전후로 대다수의 브라되르는 매대를 정리하는데, 악성 재고를 급히 헐값에 팔기 때문에 흥정이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구역에 따라서도 시장 풍경이 달라진다. 중세 정기시의 심장이었던 옛 시장터인 ‘드골장군 대광장(Place du Général-de-Gaulle)’은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장소이다. 군악대가 유행가를 연주하고, 각종 TV채널의 카메라가 축제의 열기를 화면에 담아낸다. 이곳과 리우르 광장 (Place Rihour)에는 전통적으로 식당과 일반 상점을 찾을 수 있다.

고미술품이나 고가구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골동품 판매상은 루이 14세 대로 (Boulevard Louis XIV), 자유 대로 (Boulevard de la Liberté), 그리고 릴 시타델 주변의 샹 드 마르스 광장 (Esplanade du Champs de Mars) 구역에 따로 조성된 공간에 모여있다. 와젬에서는 중고 자전거와 부품을 살 수 있고, 책과 LP판, DVD 등은 릴의 구도심의 북쪽과 마세나 가 (Rue Masséna), 레옹 강베타 가 (Rue Léon Gambetta) 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청 옆에 자리한 파리 성문 (Porte de Paris) 주변으로 다양한 비영리 협회와 정당, 노조의 부스가 모여있고, 현재는 다목적 문화센터가 된 옛 생소뵈르 역 (Gare Saint-Sauveur)의 ‘어린이 브라드리’ 구역에선 청소년이 직접 각종 장난감과 책, 보드게임, 육아용품을 판매한다.

브라드리를 상징하는 먹거리, 물-프리트

Hanbyeol JEON
© Hanbyeol JEON

브라드리가 처음이라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걱정하지 말라! 토요일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대부분의 식당이 길가에 간이 테이블을 놓고 물-프리트 moules-frites라는 단일 메뉴만을 내놓는다. 짭짤한 홍합탕과 고소한 감자튀김의 환상적인 궁합을 뽐내는 이 메뉴는 1893년 브뤼셀의 유명 음식점인 ‘쉐 레옹 Chez Léon’에서 처음으로 대중화됐고, 릴 브라드리에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했으리라 추정된다. 신선한 네덜란드 산 홍합을 각종 야채와 함께 백포도주에 쪄서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 식으로 소기름에 튀긴 감자튀김과 함께 내놓는데, 두 재료 모두 값싸고 조리가 빠르다는 장점 덕에 대규모의 인원에게 끊임없이 대접할 수 있다.

Hanbyeol JEON
© Hanbyeol JEON

매년 500톤의 홍합과 20~30톤의 감자튀김이 소비된다. 이때 나온 홍합 껍데기를 식당 근처 광장에 쌓아 산더미를 만드는 전통이 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잠시 금지되었다. 현재는 컨테이너를 곳곳에 설치해 껍데기를 모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2024년에는 이 홍합 껍데기 중 4톤을 재활용해서 바닥재와 벤치를 만들었다. 참고로 재료 소진을 노리는 일요일 점심에 물-프리트 가격도 ‘브라드리’ 세일에 들어간다.

Hanbyeol JEON
© Hanbyeol JEON

오늘날 릴의 브라드리는 이웃인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 말고도 전 세계의 여행객을 사로잡는 무대가 되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빈티지 물품을 사러 왔다가 릴 시민의 느긋하고 친절한 면모와 아름다운 도시 풍경에 푹 빠지곤 한다. 중세부터 이어진 브라드리는 여러 차례의 전쟁과 경제적 공황에서 서로를 도우며 생존한 릴 시민의 역사이며 정체성이다. 단순한 벼룩시장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시간인 동시에, 기후위기와 시장 만능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자원절약과 재활용이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안책이기도 하다. 느긋하면서도 역동적인, 각자의 리듬대로 흘러가는 독특한 축제에서 누군가의 역사가 담긴 물건을 만나 보는 건 어떨까?

브라드리 기간에 볼 만한 곳

Mathieu Lassalle
© Mathieu Lassalle
Mathieu Lassalle
© Mathieu Lassalle

릴 플랑드르 역과 릴 유럽 역 Gares Lille-Flandres et Lille-Europe

릴에는 특이하게도 두 기차역이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바로 1867년 완공된 종착역 릴-플랑드르 역과 1994년에 개업한 런던, 파리, 브뤼셀을 잇는 국제역인 릴 유럽 역이다. 릴 플랑드르 역은 파리의 옛 북역 건물을 떼어와 개조한 사실로, 릴 유럽 역은 지하철에서 역사로 올라가는 길에 설치된 장 파투 (Jean Pattou)의 유럽 각국의 풍경을 담아낸 벽화로 유명하다.

Hanbyeol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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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르 궁 Palais Rihour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의 주문으로 1453년에서 1473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공작궁은 수많은 화재로 인해 19세기에 철거되었다. 궁의 일부인 탑 두 개와 ‘콩클라베의 방’이라 불리는 예배당만이 남아있다. 1층의 옛 수비병들의 거점은 오늘날 릴 관광안내소 지점으로 쓰이고 있다.

Laurent JAVOY Hello Lille
© Laurent JAVOY Hello Lille

옛 증권거래소 Vieille Bourse

1653년에 개관한 릴의 첫 증권거래소는 다양한 색과 화려한 부조 장식으로 ‘플랑드르 르네상스 양식’을 완벽히 대표한다. 대광장에 위치한 증권거래소는 소·도매상, 무역상, 환전상의 거점으로, 릴 부르주아 계층의 강력함을 나타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상공회의소가 생긴 20세기 초부터 경제적 기능은 상실하고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다 오늘날에는 중고서적과 엽서 등을 파는 고서적상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Laurent Javoy (38)
© Laurent Javoy (38)

릴 미술관 Palais des Beaux-arts de Lille

‘미술궁’이라고도 불리는 릴 시립 미술관은 일 드 프랑스 지역을 제외한 미술관 중 건물과 컬렉션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한다. 1892년에 개관한 정사각형의 건물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유럽의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제작한 도시의 입체 모형 지도 plans-reliefs가 대표작이다. 브라드리 주말에는 상설전시는 개방하지 않으나, 1층의 아트리움에서 ‘만화책 브라드리’를 연다.

Anne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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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byeol JEON

프랑소아 루이 조세프 와토, 브라드리 풍경, 1799~1800년 경, 릴 오스피스 콩테스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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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에 말발굽에 차여 쓰러진 상인의 치마 위에 Al Brade라는 팻말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By 릴 관광안내사무소 (Hello Lille)

릴 관광안내사무소(Hello Lille)는 2019년 릴 유럽 메트로폴(Métropole Européenne de Lille), 오드프랑스 지역 상공회의소(CCI Région Hauts-de-France), 앙트르프리즈 에 시테(Entreprises & Cités)가 공동으로 설립한 릴 광역권의 지역 매력도 전담 기관이다. 프랑스 제4의 대도시권인 릴의 인지도 제고와 경제 발전을 프랑스 국내외에서 지원한다. 기업과 투자자의 지역 진출 프로젝트를 돕고, 지역의 주요 산업 분야와 우수 거점을 알리며, 지역 브랜드 ‘Hello Lille’을 운영한다. 또한 경제·이벤트·대학·관광 분야의 다양한 관계자를 연결하고, 대형 행사 유치와 비즈니스 관광 발전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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