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시슬레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파리 근교 모레쉬르루앙 여행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주말이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산을 가거나, 바다나 계곡 등의 자연으로 떠난다. 그 이유는 출퇴근 시간 숨 막히는 지하철 그리고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빌딩 숲에서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말 파리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에게도 파리는 어수선했다. 오스만 남작의 도시 정비 사업으로 도시 전체가 공사장으로, 이후엔 프로이센 제국과의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혼돈 그 자체였다. 오늘은 복잡한 파리를 벗어나 한적한 근교 도시에서 홀로 오랜 시간을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파리지앵 도슨트가 강력히 추천하는 마을, 바로 알프레드 시슬레의 마을 '모레쉬르루앙'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 화가

moret sur loing알프레드 시슬레, < 모레쉬르루앙 >, 1891.

시슬레는 영국인이었지만, 파리에서 태어나 인상파 대표 주자인 클로드 모네, 르누아르와 함께 활동했다. 덕분에 영국식의 이름은 시슬리보다, 프랑스식 발음인 시슬레라고도 불린다. 그는 정해진 법칙 아래 학문적인 그림을 그렸던 일반적인 화가들과 달리 야외의 풍경(plein air)의 색을 포착해서 그려왔다. 다만, 시슬레는 살아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스타일이 확연하게 달라졌던 모네 같은 화가와는 달리 한결같이 초기 인상파 화가들이 추구했던 자연의 빛의 재현을 끝까지 이어 나간 덕분에 그 가치를 사후 인정받았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상당수 볼 수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의 마을

모레 쉬르 루앙 2©Parisleo
모레쉬르루앙(Moret-sur-Loing)은 일 드 프랑스 지역에 위치하고 가장 작은 행정구역의 단위인 코뮌에 해당한다. 하지만, 작은 마을의 규모에 비해 파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 이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회로 LES PLUS BEAUX DÉTOURS DE FRANCE'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루앙(Loing)강이 흐르는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중세 시대의 마을의 구조를 오랜 시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콜롱바주 양식의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집, 고딕 양식의 교회 등의 건물은 시슬레가 그렸던 그림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모레쉬르루앙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 이라면 시슬레가 파리를 떠나서 왜 이곳을 고집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모레쉬르루앙 마을의 공식 명칭은 모레루앙에오르반(Moret-Loing-et-Orvanne)으로 변경되었다.

모레 쉬르 루앙 교회©Parisleo
시슬레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예술여행

  • 그림의 배경지, 교회 주소: Rue de l'Église, 77250 Moret-sur-Loing
  • 시슬레의 생가 주소: 19 Rue Montmartre, 77250 Moret-Loing-et-Orvanne
    *현재는 개인 사유지로 관광객들에게 내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 시슬레의 묘지 : 49 Rue de Gros Bois, 77250 Moret-sur-Loing

모레의 다리, 그리고 루앙강

모레의 다리©Parisleo

모레쉬르루앙은 프랑스 왕들이 사랑했던 퐁텐블로 숲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로, 루이 14세의 재무장관이었던 푸케를 비롯한 귀족들이 아주 사랑했던 마을이었다. 그 이유는 마을 옆 루앙(Loing)강 덕분이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루앙강에서 한가롭게 카누를 즐기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시슬레는 이곳에 오랫동안 거주했기에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딘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강과 다리 그 너머에 있는 집과 교회 마지막으로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의 색을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는 예술가였다.

모레의 다리 그림 배경지©Parisleo
< 모레의 다리 > 그림 배경지

  • Rue du Pont national, 77250 Moret-Loing-et-Orvanne
  • 1 Rte de Saint-Mammès, 77250 Moret-Loing-et-Orvanne

프랑스 왕들이 사랑했던 간식, 보리 사탕 Le sucre d’orge

musée du sucre d'orge©Parisleo

모레쉬르루앙에 가서 꼭 먹어봐야 하는 간식은 바로 보리 사탕이다. 지역의 베네딕트 수도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보리 사탕은 밋밋한 맛이지만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평온한 도시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간식이다. 당시 수도원에서 설탕과 보리를 섞은 계기는 의약품을 실험하면서였지만, 프랑스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면서 프랑스 왕들도 즐겨 찾는 간식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조리법이 유실되었다가, 베네딕트 수도회가 다시 모레쉬르루앙에 정착하면서 17세기의 방식 그대로 색소나 향료를 첨가하지 않고 생산하고 있다.

보리 설탕 가게©Parisleo

  • 보리 사탕 박물관: Rue du Pont national, 77250 Moret-Loing-et-Orvanne
    *글 쓰는 시점 휴업 중
  • 보리 사탕 가게 : Pl. Royale, 77250 Moret-Loing-et-Orvanne,

프랑스 공화국 황제가 머물렀던 곳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흔적©Parisleo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그는 전후 처리로 인해 연합군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 보고 섬에서 탈출했다. 파리로 가기 하루 전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모레쉬르루앙에 머물렀다. 황제의 부활을 알리기 전 복수의 칼날을 다듬었던 장소는 현재 비영리 단체인 '레 자미 드 시슬레(Les Amis d'Alfred Sisley)가 운영하는 뮤지엄 공간으로 변모했다. 시슬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Les Amis d'Alfred Sisley©Parisleo

  • Les Amis d'Alfred Sisley: 24 Rue Grande, 77250 Moret-Loing-et-Orvanne